전쟁 영화인데, 이상하게 숨부터 막혔던 이유
저는 사실 〈1917〉을 극장에서 한 번 보고, 다시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영화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너무 피곤했거든요. 보고 나면 몸은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다리가 아프고 어깨가 굳어 있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전쟁 영화 특유의 감정 소모 때문이라고 넘겼죠.
그런데 얼마 전, 밤에 혼자 집에서 TV를 켜다가 이 영화를 다시 틀게 됐습니다. 이유는 별거 없었습니다. 요즘 영화들 보다가 집중이 잘 안 돼서, “그래도 이건 끝까지 보게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반쯤은 테스트였습니다. 예전에 좋았던 영화가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괜찮을지, 아니면 그때만의 기분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두 번째 관람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칭찬입니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1917〉은 시작부터 친절하지 않습니다. 인물 설명도 거의 없고, 감정 이입을 도와주는 배경 설명도 많지 않아요. 그냥 병사 두 명이 풀밭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카메라는 거의 멈추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인 ‘원테이크’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이 원테이크가 기술 자랑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보통 전쟁 영화는 컷 전환으로 숨 쉴 틈을 줍니다. 장면이 바뀌면서 감정도 한 박자 쉬게 되죠. 그런데 〈1917〉은 그걸 안 해줍니다. 계속 따라옵니다. 도망칠 구석이 없습니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요,
게임에서 세이브도 못 하고 체크포인트 없이 계속 이동하는 느낌입니다. 실수하면 끝이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이 영화는 그 상태를 2시간 가까이 유지합니다.
“전쟁은 이런 거다”라고 말하지 않는 전쟁 영화
많은 전쟁 영화들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던집니다. 전쟁의 참혹함, 영웅주의의 허무함, 국가와 개인의 충돌 같은 것들이죠.
〈1917〉은 조금 다릅니다. 이 영화는 전쟁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안에 던져놓고 버텨보라고 합니다.
총알이 날아오는 이유도, 폭탄이 떨어지는 맥락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위험해지고, 갑자기 안전해지고, 또 다시 죽음이 튀어나옵니다. 이게 실제 전쟁에 가까운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은 큰 그림을 모릅니다. 지금 살아남는 게 전부죠.
다시 보면서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특별히 뛰어난 병사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전략을 세우는 타입도 아닙니다. 그냥 “해야 해서 가는 사람”입니다. 이 점이 영화 전체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액션’이 아니라 ‘정적’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화려한 액션이 아닙니다.
적이 없는 폐허를 지나가는 장면, 죽은 병사들이 방치된 들판, 무너진 건물 사이를 혼자 걸어가는 순간들입니다.
소리가 거의 없는 장면들에서 오히려 긴장이 더 커집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곧 뭔가 터질 것 같다”는 감각이 계속 따라옵니다. 이게 진짜 무섭습니다.
공포 영화에서 갑툭튀 기다리는 느낌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고 날까 봐 조심조심 걷는 기분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에서 이 영화는 전쟁을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독하게 피곤한 상태로 보여줍니다. 계속 긴장하고, 계속 조심하고, 계속 앞으로 가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보면서 “아, 이거 진짜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연기 이야기 – 과하지 않아서 더 믿음이 간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솔직히 말해 화려하지 않습니다. 감정 폭발도 거의 없고, 울부짖는 장면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 믿어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상황에서 저 사람이 저 정도 반응을 보이는 게 딱 적당해 보이거든요.
특히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주인공의 표정 변화입니다. 처음엔 긴장과 호기심이 섞여 있고, 중반쯤 가면 피로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후반부에 가서는 감정이 무뎌진 느낌까지 납니다.
이게 연기 티가 안 나서 좋았습니다. “연기 잘한다”라는 생각보다 “저 상황이면 저러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하는 인물들도 과하지 않습니다. 짧게 등장하고, 짧게 사라집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에 딱 맞는 사용법입니다.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 인물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입니다.

솔직한 아쉬움 – 모두에게 좋은 영화는 아니다
칭찬을 많이 했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지독하게 불친절합니다.
원테이크 연출 때문에 영화적 리듬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몰입이 잘 안 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도 “대단한 건 알겠는데 재미는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 자체는 정말 단순합니다. 복잡한 서사나 반전, 캐릭터 서사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경험”에 훨씬 더 무게를 둡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견디는’ 느낌이 강합니다.
또 하나, 다시 보기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두 번째 관람이 더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주 틀 영화는 아닙니다. 마음이 편할 때 보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다시 보고 나서 느낀 생각
처음 봤을 때는 “대단한 영화”라는 감정이 강했다면, 다시 보고 나서는 “진짜로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지만, 대신 솔직합니다. 전쟁을 멋있게 포장하지도 않고, 감동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보고 나면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에는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아,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걸어가야 한다면 나는 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요.

개인 평점
★★★★☆ (4.5 / 5)
완벽하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고, 취향 안 맞으면 꽤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이 정도로 일관된 연출과 목적을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전쟁 영화를 ‘체험’처럼 느끼고 싶은 분
화려한 설명보다 현장감 있는 연출을 좋아하는 분
보고 나서 가볍게 웃고 끝내는 영화보다는, 생각이 남는 영화를 선호하는 분
반대로,
편하게 보기 좋은 영화 찾는 분
명확한 기승전결과 감정 정리를 원하는 분께는
솔직히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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