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건 솔직히 말하면 우연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조조 래빗을 처음 봤을 때는 “전쟁을 코미디로 풀었다는 영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웃긴 장면 위주로만 기억이 남았고,
“아이 시점이라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인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요즘 들어 뉴스나 다큐를 보다 보면
극단적인 이념이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때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내가 이 영화를 보면 느낌이 어떨까?”
30대 중반이 된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진 상태에서 보면
전혀 다른 영화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조 래빗은 웃기기만 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웃음 뒤에 남는 불편함이 꽤 오래 가는 영화였고,
그 불편함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본 전쟁, 그게 더 무서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을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조조는 전쟁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년이고,
나치즘이라는 극단적인 이념을
마치 동화 속 영웅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설정 자체만 놓고 보면 굉장히 위험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전쟁과 폭력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위험한 지점을
의외로 아주 교묘하게 비켜 갑니다.
조조가 믿고 있는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나 있습니다.
그가 상상하는 히틀러는 우스꽝스럽고,
그가 존경하는 군인들은 어딘가 허술하고,
그가 꿈꾸는 영광은 현실과는 전혀 맞닿아 있지 않습니다.
이걸 웃으면서 보다가도,
어느 순간 “아, 이게 진짜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에게 주입된 이념이 이렇게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이
웃음보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타이카 와이티티식 유머, 호불호는 분명하다
이 영화를 만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특유의 유머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됩니다.
상황 자체는 잔인하고 무거운데,
그걸 굳이 웃음으로 비틀어 보여주는 방식이죠.
솔직히 말하면,
이 유머 코드가 모든 사람에게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쟁이라는 소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한 접근을 기대한 분이라면
초반에는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히틀러를 희화화한 설정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지점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 희화화가 단순한 장난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히틀러를 우스운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그가 상징하는 공포를 해체하려는 의도가 보였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정말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웃음이 먼저 나오느냐,
불편함이 먼저 느껴지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무게
조조의 엄마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지키고 싶지만,
그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미 너무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
엄마는 아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지 못합니다.
대놓고 반대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방관하지도 못합니다.
이 애매한 위치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 인물이 보여주는 선택과 결과는
영화를 단순한 성장 이야기에서
훨씬 더 묵직한 이야기로 끌어올립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화려한 전쟁 장면도, 웃긴 상상 장면도 아닌
이 인물과 관련된 순간일 가능성이 큽니다.

전쟁 장면이 오히려 배경처럼 느껴지는 이유
이 영화에는 분명 전쟁 장면이 등장합니다.
폭격도 있고, 총성도 있고, 죽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게 중심이 아니라 배경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초점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인식 변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조가 무엇을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이 어떻게 흔들리고,
결국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전쟁 장면은
사건으로 소비되기보다는
조조의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계기로 기능합니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웃기지만 가볍지 않은 영화
조조 래빗을 보고 나서
“재밌었다”라는 말로만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웃긴 장면은 분명 많지만,
웃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뭘 보고 웃은 거지?”
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옵니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편하게 웃고 끝내고 싶은 분들에게는
조금 피곤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웃음 뒤에 남는 감정까지 생각해보는 걸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반 이후 전개는
조금 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몇몇 캐릭터는
상징적인 역할에 그쳐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또한 유머 코드가
끝까지 동일하게 유지되다 보니
감정이 깊어질 수 있는 지점에서
조금 더 여백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건 취향 문제에 가깝지만,
저처럼 30대 중반 이후에 다시 본 관객에게는
조금 더 차분한 호흡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되는 이유
이 영화는
전쟁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영웅을 내세우지도 않고,
눈물 짜내는 연출에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사람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믿게 되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이 질문은
전쟁 영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단순한 시대극이나 코미디로 끝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개인 평점과 추천 대상
개인 평점: ★★★★☆ (5점 만점 중 4점)
이 점수를 준 이유는 분명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기 색깔이 확실하고,
보고 난 뒤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전쟁 영화를 색다른 시선으로 보고 싶은 분
단순한 웃음보다 의미 있는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
이런 분들께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전쟁 영화는 무조건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
가벼운 코미디를 기대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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